여행/육조고도(六朝古都) 남경(南京,난징)

중산릉(中山陵 중산링)과 영곡사(灵谷寺, 링구스)

보헤미오 2016. 12. 2. 20:02

  지하철 2호선 시아마팡역(下马坊站) 2번 출구를 나와서 매 10분 단위로 출발하는 파란색 전동차(电动车, 10元)을 타면 중산릉(中山陵)에

5-6분 이면 도착한다. (개방시간; 08:30-17:00, 무료)

남경  교외 자금산 남쪽 기슭에 있는 중산릉은 혁명가 손문(孙文, 1866-1925)의 무덤이다. 중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1911년 신해혁명(申亥

革命)으로 청(清)이 망하고, 1912년 중화민국 임시정부 대총통에 취임한다. 우여곡절 끝에 원세개(袁世凱,1859-1916)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일본으로 망명한후 중화혁명당을 결성하고 반원세개 운동을 펼친다. 1916년 원세개가 죽은후 1919년 5.4 운동이 일어나고 중화혁명당을 국민당으로 개칭하고 공산당과 국민당의 제1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키기도 한다. 그는 1925년 베이징에서 병사하였고 양당간의 무력투쟁은 1948년까지 계속된다. 대륙에서는 중국 근대 민주혁명의 위대한 선행자,  대만에서는 국부(国父)로 받들고 있다. 중산릉은 장개석(蒋介石,1887-1975)이 주도했으며 제왕의 능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패방은 박애(博爱)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박애방(博爱坊)아라고도 한다.


패방을 들어서서 길이 375m 묘도(墓道)



정문인 능문(陵门), 손문의 글씨로 천하위공(天下为公, 천하는 공평하다.)이라고 새겨져 있다.


   능문뒤 계단을 오르면 높이 17m의 비정(碑亭)이 나온다. 중앙에 높이 9m 석비가 있으며 안진경(颜真卿) 체로  중국국민당장 총리 손선생 어차(中国国民党葬总理孙先生於此, 중국국민당 총리 이곳에 장사 지내다.)가 새겨져 있다.




  다시 392 계단을 올라 제당과 묘실이 있다.






    제당의 문미(门楣)에는 민족(民族), 민권(民权), 민생(民生)이 전서로 새겨져 있다. 천지정기(天地正气)도 손문(孙文)의 글씨다.



손문(孙文)의 좌상


     묘실에 들어가면 중앙에 대리석관이 있고 석관 덮개위에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누워있는 와상(卧像)이 있다고 하나 개방하지 않아서 보지못해 아쉬웠다.






     영곡사(灵谷寺)는 주원장이 당초 개선사(开善寺)를 1381년 영곡선사(灵谷禅寺)로 명명하고  명대 불교 3대 사원의 하나로 삼았다.

현재는 국민당의 열사묘지로 되어 있다. 가로수가 잘뻗어있는  길을 약  30분간 걸었다.  가랑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맑은 공기, 확터인 숲길

이라 아주 상쾌 하였다.



                                                   산문(山门)으로 영곡승경(灵谷胜境) 문액이 붙어 있다.






     무량전(无梁殿)은 양목(梁木)을 쓰지 않고 벽돌로 지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내부는 신해혁명  밀랍 인물관(腊像馆)



서태후(西太后) 밀랍상




       1842년 남경조약(南京签约) 체결 장면이다아편전쟁(1840-1842)을 끝내기 위해 영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이다. 이로 인하여

홍콩이 영국에 넘어가고 상해(上海)가 개방되었다.



영곡사 정문





       영곡탑(국민 혁명군 전몰자 기념탑)은 1931-33년에 완공되었다. 높이 60m, 9층 8면이고 탑내 벽에는 손문(孙文)의 연설문등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