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남역사와 문화의 발자취

18. 풍류남아 하지장 비서감의 사당, 하비감사(贺秘监祠, 허비지엔쓰)

보헤미오 2017. 12. 29. 19:55

      먼저 샤오싱(绍兴) 노동로에 있는 당대(唐代) 최고문객 하지장(贺知章, 659-744)의 사당을 찾았다. 당현종(唐玄宗) 때 비서감(秘书监)을 역임하여 사당의 편액이 하비감사(贺秘监祠, 허비지엔쓰)로 되어 있다.


      하지장은  695년 35세때 진사시에 장원으로 등과하여 태상박사(太常博士), 예부시랑(礼部侍郎), 태자빈객(太子賓客)겸 비서감(秘书监)을 역임하였으며  태자는 후에 숙종(肃宗)이 되는 현종(玄宗)의 아들이다. 그는 호방 활달한 풍류인으로 자신의 호를 사명광객(四明狂客, 샤오싱 사명산의 미친 나그네) 이라 칭하며 술을 좋아하고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두보(杜甫)는 그를 음중팔선(饮中八仙, 술을 마시는 여덟 신선)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두보의 음중팔선가중 하지장을 표현한 싯구이다.,


知章骑马似乘船(지장기마사승선)

술을 한잔 먹은 하지장이 말을 타면 물결에 흔들리는 배를 탄듯 하고

眼花落井水水低眠(안화낙정수저면)

눈이 어두어 우물에 빠져도 물밑에서 자더라

 

    

           하지장은  마흔살 연하인 이백(李白)을 처음 만났을 때 이백의 촉도난(蜀道难, 촉땅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라)을  보고 이백을 "세상에 귀양온 신선"이라고 극찬하며 비범함을 인정했다. 이후 "적선(谪仙)"은 이백의 별명이 되었다. 두사람은 친하게 지냈고 한번은 술을 먹고 술값이 없자 하지장이 차고 있던 조정대신의 장식품인 금구(金龟)로 술값을  치룬 일화는 유명하다. 여기서 "금구환주(金龟换酒, 금과 술을 바꾸다))" 라는 성어가 생겼다고 한다



하비감사 정문



         하지장은 85세에 고향인 샤오싱으로 귀향했다.  그때의 느낌을 쓴《회향우서(回乡偶书, 고향에 돌아와서 우연히 쓰다)》2수는  천고의 절창으로 일컬어진다.  제1수는 다음과 같다.



少小离家老大回(소소이가노대회)

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乡音无改鬓毛衰(향음무개빈모쇠)

고향 말은 그대론데 머리털만 성글었네

儿童相见不相识(아동상견불상식)

아이들은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笑问客从何出来(소문객종하출래)

웃으며 묻는다네 어디서 왔느냐고



       숭현당(崇贤堂)은 당대(唐代)에 건립되어 소실, 중건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1865년 현존 건물이 중건되었다.  정면에 하지장의 좌상이 있고 뒤에 그의 시 《회향우서(回乡偶书)》제 1수가 모택동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



숭현당




하지장 좌상



             하비감사 복도에는 그의 대표작 《영류(咏柳, 버드나무를 읊다)》등 유명한 시들이 오석(乌石)에 새겨져 걸려있다.  하지장이 별세한후 이백이 샤오싱을 방문하여 그를 조문하는 시 《대주억하감(对酒憶贺监, 술을 마시며 하비서감을 추억하다)도 걸려있다.



하지장의《영류(咏柳》




이백의 《대주억하감(对酒憶贺监)》




음중팔선도



         숭현당 뒷문의 작은 공간인 천정(天井)에는 사각형 정자가 하나 있다.  바로 "하지장을 그리워 한다"는 이름의 회하정(怀贺亭)이다.




회하정



         뒷편에 있는 천추루(千秋楼)는 2층 건물인데 아래층에 포박함진(抱樸含真, 소박함을 품고 참됨을 머금다.)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천추루




           하비감사에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은래조거(周恩来祖居)와 주은래 기념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