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천하보고(天下宝库) 여산(庐山,루산)

백록동서원 (白鹿洞书院, 바이루동 슈위엔)

보헤미오 2016. 12. 10. 22:38

  

   여산 오로봉(庐山五老峰) 남쪽 10km 기슭에 있는 백록동서원(白鹿洞书院, 바이루동 슈위엔)으로 향했다. 비가 오고 있어서 차창 밖으로

오로봉의 모습을 볼수 없었으나 오로봉은 보는 각도에 따라 앉아있는 다섯 노인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강(九江, 지우장)에서는 구강버스터미널(九江汽车总站)에서 성자현(星子县, 싱즈시엔)행 버스( 11元)를 타고 가다가 서원길 입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면 쉽게 간다. 구강시내에서 택시를 타면 50元 정도이다. 백록동서원은 중국 최초의 서원으로  중국 4대 서원중 하나이다.  785년   당(唐)나라의 이발(李渤) 형제가 이곳에 은거하여 독서하였는데 흰사슴 한마리가 이발(李渤, 773-831)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백록동(白鹿洞)이라 이름 지었다. 그후 이발(李渤)은 떠났다가 821년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다시 왔을 때 흰사슴은 가고 없었으나 건물을 지어 독서와 강학을 할수 있게 하였다. 송(宋)나라 때 이를 백록동서원이라고 하였고  조정은 이곳에 국자감(国子监)에서 인쇄한 9경(九经)를 제공하였다. 그후 1179년 남송(南宋)의 주희(朱熹,1130-1200)가 남강지군(南康知军)으로 발령받아 병화로 파괴된 서원을 재건하고 동주(洞主)가 되어 전성기를 맞았다. 천하서원의 으뜸(天下书院之首)으로서  남경(南京,난징)의 국자감(国子监)과 동격이었다. 이후에도 계속  지위를 유지해 왔으나  1903년 서원 기능이 중지되었고 1949년 중요 문화재로 지정 관리 되다가 1996년 여산(庐山)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개방시간, 08:00-17:00, 40元)



백록동서원 (白鹿洞书院)의 대문





반지(泮池)



서원의 정문인 예성문(礼圣门)




   예성전(礼圣殿)


 사원의 중심건물인 예성전(礼圣殿), 즉 대성전(大成殿)이다.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을 서원에서 제사 지내던 곳이며 역대 유가성현들에 대한 예를 표하는 곳이다.







    중앙에 있는 공자 입상위에  걸린 만세사표(万世师表, 만세에 모범이 될만한 덕이 높은 사람) 편액은 청(清)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가 쓴 것이다.






충(忠), 효(孝), 염(廉), 절(节)은 주희(朱熹),즉 주자(朱子)의 글씨이다. 좌우 벽에 안자(颜子), 자사(子思)등 12철(哲)의 소상이 석각되어

있다.



선현서원(先贤书院) "贒" 자가 특이하다.




주자(朱子)를 모시는 사당




주자(朱子)의  자화상(自画像) 석각





단계정(丹桂亭)


단계정(丹桂亭) 중앙에 자양, 즉 주자(朱子)가 손수 심은 단계 (柴阳手植丹桂)라고 써놓은 비석




송(宋)나라 때 처음 건립된 강의실인 명륜당(明伦堂)





    주자 백록동교조(朱子白鹿洞教條)


 명륜당 벽에 적혀 있는 주자 백록동 교조(朱子白鹿洞教條, 일종의 교칙) 20 항목이 오교지목(五教之目, 5가지 가르침)으로 나누어 쓰여있다.  우리나라 모든 서원에도 걸려있다. 백록동서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주자(朱子) 소상




흰 사슴 석상이 있는 동굴인 백록동(白鹿洞)





독대정(独对亭)


돌로 만든 육각형의 독대정(独对亭). 1181년 주자가 이정자를 짓고 서원을 방문하는 관리중 문관은 이자리에서 수레에서 내리고

무관은 말에서 내려 서원까지 걸어 가도록 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접관정(接官亭) 이었다.




침류교(枕流桥)




바위에 쓴 "침류(枕流)"는 주자(朱子)의  글씨라고 한다.




관도계서원앞 에 흐르는  관도계(贯道溪)의 바위에 백록동(白鹿洞)이라 쓰여있다.




주차장에 운집해 있는 중국인 관광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