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백의 제2고향 마안산(马鞍山)

채석풍경구 (采石风景区, 차이스 펑징취)

보헤미오 2016. 12. 3. 21:02

   

 이백묘원(李白墓园) 관광을 마치고 대기한 택시를 타고 채석풍경구(釆石风景区) 정문에 도착했다.이곳에는  채석기(采石矶, 차이스지), 이백기념관(李白纪念馆), 취라산(翠螺山)의 유적들이 있다. 채석기는 과거 우저기(牛渚矶, 뉴주지)로 불리었다.우저산(牛渚山)도 채석산(采石山)에서 취라산(翠螺山, 푸른 소라 같은 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채석기는 군사 요충지 이기도 하지만 이백(李白)이 머물었던  자취로 중국의 유명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이백의 야박우저회고(夜泊牛渚怀古, 밤에 우저에 정박하여 옛날을 그리워하다.)는  그가 39세때 이곳을 두번째 방문하고 쓴 시로 유명하다.



채석기(采石矶) 정문












     청풍정(清风亭)


 청풍정(清风亭)은  원래 당도(当涂)에서 이백이 술마시며 시를 읊던 정자였던 것인데 명나라 때 이곳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모택동이 쓴 이백(李白)의 걸작시 《장진주(将进酒)》비석





취월제(醉月齐)




  



  태백루(太白楼)


  태백루(太白楼)는 이백기념관의 중심 건물이다. 이백(李白) 사후  50여년 후 처음 건립되었고, 원래 이름은 적선루(谪仙楼)였다. 적선(谪仙)은 귀양온 신선 즉 이백(李白)의 별칭이다. 1662년 청나라 때 태백루로 개칭했다. 뒷편에 이백사(李白祠)라는 사당도 지어 이를 합쳐서 당이공청련사(唐李公青莲祠)라고 부른다. 1854년 태평천국난 때 소실되었다가 1877년 이홍장(李鸿章)등이 희사하여 다시 건립한것이다. 태백루(太白楼),적선루(谪仙楼), 시관성당(诗冠盛唐, 시는 성당이 으뜸이다.) 이라는 편액이 상하로 걸려있다.




  회사정(怀谢亭)


 회사정(怀谢亭)은 이백(李白)이  채석강(采石江)에서 그 옛날 동진(东晋)의 장군인 사상(谢尚, 308-357)을 그리워하며 시를 썼던 것을 기념하는 정자이다.

           


취라산 정상쪽으로 오르는 길



   취라산 중턱에 있는 이백의관총(李白衣冠冢)이다. 이백(李白)의 죽음에 관한 전설과 함께 그이 옷을 묻은 곳이다. 높이 2m, 직경 5m, 둘레 40m이다. 이백(李白)의 묘는 당도(当涂) 청산(青山)에 있다.




    삼태각(三台阁)


 취라산 꼭대기에 있는 삼태각(三台阁)이다. 1642년에 건립된후 수차례 중건하였다. 높이 30 m, 5층 누각에 오르면 주위 경관을 한눈에 볼수있다




유유히 흐르는 채석강(采石江)




오른쪽 멀리 채석강(采石江)이 장강(长江)에 합류하고 있다.




   이백 비천상(李白飞天像)


 의관총에서 좀 떨어진 아래쪽에는 1987년에 만들어진 높이 3.7m의 이백비천상(李白飞天像)이 있다. 기단에는 이백(李白)의 임종가(临终歌)인 대붕가(大鹏歌)가 새겨져 있다.

 


   연벽대(联壁台)


연벽대(联壁台)는 취라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바위로 전설에 의하면 이백(李白)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투신했다는 곳이다. 낭떠러지 밑은 채석강(采石江)이 흐른다. 그래서 이곳을 착월대(捉月台)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