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안산(马鞍山)으로 가기 위하여 아침 7시경 남경 숙소를 출발하여 택시로 난징 난역(南京南站)으로 갔다. 교통체증으로 40-50분 거리를
1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했다.1층은 버스터미널이고 2층은 고속철역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버스는 매 20분 마다 출발하고 마안산 버스터미널
(马鞍山旅游汽车站)까지는 약 1시간 소요된다. 마안산에서 도착 당일 2곳을 관광하기 위하여 오전 9시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타고가는 버스 (17元/人)
오전 10시경 마안산 버스터미널(马鞍山旅游汽车站)에 도착하여 택시로 터미널에서 가깝고 예약된 쥐즈 호텔(桔子酒店)에 여장을 풀고 바로 관광하기로 한다.
마안산시는 인구 약 223만명 정도이고 육조시대(六朝时代) 고적과 문화유적이 있으며 장강(长江) 10대 항구의 하나이다.
먼저 약 30 km 남쪽에 있는 당도(当涂, 탕투)의 이백묘원(李白墓园), 통상 청산태백묘(青山太白墓, 칭산 타이바이미아오)로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비도 오고 시간절약을 위해 왕복 100元을 주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마안산 장거리 버스터미널 (마안산 기차역 부근소재)에 가면 매 15-20분 마다 출발하는 버스가있다.(8.5元/人) 당도(当涂)는 이백(李白, 701-762)의 제2 고향 같은 곳이다. 당시 당도 현령(县领) 이양빙(李阳冰)은 이백(李白)의 종숙(從叔)이었고 이백(李白)이 숨을 거두기 1년전 마지막으로 찾은 곳도 당도였다. 이백(李白)은 약 1,000수의 시문 편찬을 부탁했다고 한다. 청산(青山)은 높이 372m 산이지만 남제(南齐,479-502)시기의 뛰어난 시인 사조(谢眺, 464-499)로 유명해졌고 이백(李白)은 사조(谢眺)를 매우 존경했다. 이백(李白)은 62세에 당도 남쪽 10여리에 있는 용산(龙山)에서 병사했고 사인은 부협질(腐脇疾, 폐,옆구리가 곪고 구멍이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백(李白)은 마지막 시 임종가(临终歌)인 《대붕가(大鹏歌)》를 남겼다.
큰 붕새가 날아서 온 천지에 떨쳤건만
중천(中天)에서 날개 꺾여 힘 쓸 수 없었네
그러나 끼친 바람 만세를 격동하고
부상(扶桑)에 노닐며 소매를 걸어났네
후세사람 이사실을 전하겠지만
공자가 안 계시니 누가 눈물 흘리리
大鹏飞兮振八裔 中天摧兮力不济
余风激兮万世 游扶桑兮挂左袂
后人得之传此 仲尼亡兮谁为出涕
그는 용산(龙山)에 뭍였다가 사후 55년후인 817년 당시 관찰사 범전정(范传正)이 지금의 자리에 비문을 쓰고 이장했다고 한다.
이백묘원 주변 교통안내도
계속 내리는 비속을 달려 약 30분후 이백묘원 입구에 도착했다. 식당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중 한곳에 들려서 현지 생선요리로 점심
식사를 하고 안휘성(安微省)의 명주인 고정공주(古井贡酒) 한병(80元)을 샀다. 아마 주선(酒仙)인 이백(李白)도 이술을 마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청산 이백 문화여행구 안내도
11m 높이 패방(牌坊) 시선성경(诗仙聖境, 시선이 잠든 성스런 경내), 후면에는 천고풍류(千古风流, 영원한 풍류)라고 쓰여있다.
패방을 들어서면 용도(甬道)가 나온다. 폭 15m, 길이 60m 이고 양변에는 이백(李白)의 일화와 일생을 12 폭의 화강암에 선각(线刻)하였다.
고역사(高力士)가 신발을 벗기다(力士脱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우정이 깊다 (李杜情深)
큰 연못인 청련지(青莲池)이다. 이백(李白)의 호 청련거사(青莲居士)에서 이름을 땄다. 왼쪽 연못가에 거배요월(举杯遥月, 술잔을 들어 달을
맞이하다) 하는 이백(李白)의 소상(塑像)이 있다.
사당인 태백사(太白祠)이다. 871년에 건립되었고 그후 중수했다. 안쪽 천장에 시무적(诗无敵, 시에 있어서 적수가 없다)라는 현판이 있다
이말은 두보(杜甫, 712-770 )가 한 말이다. 현판아래 한백옥(汉白玉)으로 된 이백(李白)의 소상이 있다. 왼손에 칼을 잡고 있는 측면상이다. 이백(李白)은 검술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소상 뒷벽에는 태백고종(太白高踪)이라는 대형 판화가 걸려있다. 그가 다녔던 지방의 풍경과 명승그림이다.
이백(李白)의 일생소개
태백사 뒤에 이백(李白)의 묘가 있다.
이백(李白)의묘는 13 차례나 중수 했다고 한다. 둘레 25m, 높이 25m 묘의 비석에는 당명현이태백지묘(唐名贤李太白之墓)라고 쓰여있다. 누군가가 두고 간 꽃과 술병이 놓여있다.
주선(酒仙)이자 시선(诗仙)인 이백묘(李白墓) 참배하며 미리준비해간 고정공주(古井贡酒)를 한잔 올렸다. 어릴적 부터 듣던 대시인과의 감격적인 상봉이니 애송시 정야사(静夜思)를 읊어 봤다.
태백비림(太白碑林)이다.당대 서예가와 유명인사 107명의 글씨가 각각 흑색 화강암에 석각(石刻)되어 있다.
십영정(十咏亭)은 이백(李白)이 옛 당도(当涂)를 돌아보고 그 풍광을 10수로 노래한 "고숙십영(姑熟十咏)"을 기념하기 위해 당도 동쪽에 세웠던 건물이 훼손되자 이곳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청련서원(青莲书院)에는 이백(李白)의 일생을 그린 화폭들이 걸려있다.
묘원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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